우택(雨澤)
빗물이 토양에 스민 정도를 호미나 쟁기 등의 깊이로 대강 측정하는 제도. 조선 초기부터 측우기를 발명할 때까지는 우택을 계속 측정하였다. 그러나 비가 온 후 젖은 흙의 깊이는 토양의 종류, 성질, 기본토양의 건조도에 따라 달라져서 서로 비교하기에는 어려웠다. 이 이유로 세종 때 세자로서 후에 문종이 되는 이향(李珦)이 측우기를 발명하였다. 『세종실록』 세종 23년(1441년) 기록에 따르면 “세자가 구리로 주조한 기구를 궁중에 설치하고 여기에 고인 빗물의 푼수(깊이)를 조사하였다”고 한다. 이 결과 1442년에 호조의 건의에 따라 측우기가 전국에 설치되었다. 즉 15세기 전반에 전국적으로 강우에 대해 과학적인 정량측정을 개시하였는데, 이는 세계 최초의 과학적 정량적 강우 측정으로 알려져 있다. 위의 측우기와 우택 자료는 각사등록의 기록을 발췌한 것이다. 각사등록은 각 지방 관아와 중앙 관청 사이의 각종 문서와 이를 베껴 적은 등록을 알아보기 쉽도록 새롭게 정서하여 편찬한 조선시대 연구의 기초 사료집이다.